essential 4
솔직이 궁금한 부분에 대하여
고난을 통해 배우는 삶은 복이 있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 물론, 그 반대가 어떠하다는 것을 가늠해야 합니다.
음식은 자신이 섭취해야 합니다.
타인과 심지어 가족이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과연 다를까요?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을) 선물을 받으리니(행 2:38),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31 ), 는 믿음의 자녀가 전도하여 그 가족 구성원 각자가 믿고 구원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지, 믿지 않은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의 옹호를 위해 존재하는 문구는 아닌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대에게 언제나 좋은 소리를 한다고 그 사람이 진실된 사람은 아닐 수 있으며, 도리어 무지와 거짓을 속이고 자신의 안위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부류일 가능성이 있음을 성장과 성숙해 가며 알게 됩니다.
똑똑한 사람은 보면 알고, 현명한 사람은 들으면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경험하여 알고, 무식한 사람은 망해서 안다는 어느 견해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 구천을 떠돌고 귀신이 되고 지옥에 들어가고 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우리 모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와 같은 스스로 깨닳지 못하는 악인과 같은 모습의 경험이 존재함을 알며, 그나마 이런 모습은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경우일 것이며, 여전히 세상에는 악인임에도 깨닳지 못하며,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착각하며 그렇지 못한 삶이 아직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제 때 행하지 않거나 하지 않은 일, 잘못한 일 등에 모면과 회피와 변론 등을 하기 위해 그렇게 여러 사설을 만들고 등장하는 모습이 인간의 삶에 주류를 이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노력을 가치있게 평가하려는 모습에의 결국은 어떻게 될까요. 스스로 높아져 참된 신이 아니며 될 수 없음에도, 참된 신이 되려는 존재만이 세상 가운데 많아질 것임을 인류의 역사는 그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었다는데 있습니다.
진리는 오직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삼위 일체를 믿음으로 회개하고 구원에 들어 궁극적으로 천국에 들게 하시기 위해 인생에 주어진 참된 가르침이 곧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1, 32)
하나님께서 이천여년 전에 세상 가운데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참된 진리에 거하게 하십니다. “다른 이로는 구원을 주는 이가 없으니,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만민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
우리는 어떤 삶의 흐름 가운데 있어서, 자신의 할 일을 잘 해 나가면서 무언가를 의뢰하거나 아뢰어야 함이 적절한 수순이라고 보입니다. 예를 들어 가족 가운데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 그것에 신경을 씀을 넘어, 자신의 행함을 잘하고 칭찬받을 만하여 진다면, 그로 인해 그 가족 가운데 누군가의 잘못된 행실에 정상 참작 여부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당사자도 잘못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일 겁니다.
우리는 여러 나름의 이유에 근간하여 그렇게 말하길 꺼리지만, 많은 이들이 믿지 않은 조상의 죽음에 대해 어떤 의문과 주장과 견해를 보유하고 있을 것인데, 그로부터 여러 가르침의 혼재가 있음일 것으로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선상으로 믿음의 자녀가 되어 칭찬받음의 모습이 될 때, 만물의 주관자시며 심판하시는 분이신 그 분께서 그와 같은 정상 참작의 가능성에 대해 보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같은 본문 내용으로서 사도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가정이 구원을 얻으리라 의 말씀은, 그 생존하는 누군가에게는 그와 같은 전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러 진작이 좋은 곳에 거하게 함과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한 인생의 죽음 이후 영적인 부분에 대하여는, 그와 같이 만물의 주관자이시며 심판하시는 그 분에게 그 사후의 영의 거처에 대해 영향을 전달하게 하심의 가능성을 놓고 접근하는 것이 타당한 접근임을 가져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신 구원을 얻어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 좋은 영향권 내에 거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혼의 논쟁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상대의 간음한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 부적절하다고 하신 바와 같이, 모세의 때에 한시적이며 국한된 그들만의 리그 내에 스스로 설정한 범주가 있을 수 있음이, 오늘날 우리가 주장하고 믿는 것들에 있을 수 있음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겸손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
한편, 일부 교회의 이런 모습에 근간하여 사욕을 위해 부적절한 전달을 하며 많은 헌금을 얻으려는, 잘못을 토대로 설교하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모습에 유의해야 할 것임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Jan 2020